로그인 | 회원가입
 
작성일 : 13-01-25 03:39
우석 어른을 기리며
 글쓴이 : 박영준
조회 : 551  
-
우석어른을 기리며-

밤새 대전-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려 이제 막 일터로 돌아왔습니다.
마침 어젠 수능고사일이라 감독이 없는 전 쉬었고,오늘 수험생은 점수 확인차 10시 등교하기에
순천까지 문상을 다녀오고도 이렇게 글 올릴 여유가 있네요.


망자는 김字,세字,기字를 쓰셨던 어르신인데 들판에 나가셨다
렙토스피라균에 감염되어 1주일 투병 끝에 어제 영면 하셨다.향년 84세.

그 어른의 유언은 장남인 내 친구가 듣지 못하고 바로 아래 아우가 받았는데,

화장을 하라시는 것, 부조금을 받지 말라시는 것,
세금(상속세)을 착실히 내라시는 것,등이셨다고 한다.

이 어른께서 남긴,아니 만드신 땅이(간척지)무려 수백만평이 넘는다.
그럼에도....당신 누우실 10여 평은 아까워셨나보다.화장을 하라시니...


보성군 벌교읍에서 고흥반도로 가다보면 동강면이란 데가 금방 나오는데
이 곳은 바다를 막은 곳으로 1개 면 면적만한 땅이 오롯이 이 어른의 피땀으로 조성 된 것이다.

'삽 한 자루의 신화'라든가...?!

무슨 큰 기업이 나선 것도,국책으로 발주한 일도 아니다.
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자본과 특수한 노하우가 있은 것도 아니다.
친구가 공납금 조차 없어 학자금 융잘 얻게 보증 서달라며 우리 집에 온 적이 다 있었을 정도였으니..


언젠가 현대 그룹이 서산A,B지구 간척지 조성을 할 때다.아무리 애써도 마무리 물막이 공사가 안되자
생전의 정주영회장은 포기를 하기에 이르러 마지막으로 어른께 조언을 구하러 찾아왔단다.
헬기를 탄 정회장이 친구네 농장 마당에 내렸던 날.

"김사장! 내사 마 그냥 간척이고 뭐고 관둘까 하오.이렇듯 힘들고 애먹이는 것이
간척인 줄 미리 알았다면 내 시작도 안햇을끼구마요..허...."

"회장님 저의 집 이 조그만 간척사업도 30년 걸려 제우 제가 정말 제우 완공시킨 겁니다.

그리고 회장님! 회장님께서 아무리 높은 빌딩을 세우고 큰 배를 짓고 하셔봤자 100년을 못 채우고
뭐가 됐던 다시 바닥으로 내려옵니다.회장님! 허나 제가 만든 이 땅은 만 년은 그냥 이대로 있을 걸요..."

이 말에 크게 깨달은 정회장은 그 길로 되돌아가 특유의 유조선 공법으로 기어코 완성시키곤
하루는 어른을 서울로 초대해선 점심을 한 턱 내더라는 어른의 애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

아닌 게 아니라 근처를 지나다 인사라도 할 양으로 들리면 무슨 말씀이 그리 많으셨든지...
우릴 잡고 한두시간은 훌쩍 넘기곤 하셨다.


언젠가 한 번은 내게 말씀하시길,

"자네,내게 세 가지의 기쁜 게 있는데,그 게 무언고 하니..말이야...

태어나자 저 세상으로 가는 아이도 있는데 이 나이에도 살아있다는 게 그 첫 째고,

저녁답에 난닝구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논둑길을 달리면
난닝구 소매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게 그 둘 째고...

너희들 어젯 밤에 술먹고 노래하고 놀았제? 그 게 재미있더냐?
책상에 붙여놓은 이 거 함 읽어봐라.퇴계선생 이 글 함 읽어봐라.

이 글의 속 뜻을 하나 하나 뜯어 깨우침을 얻을 때 그 기쁨이 월매나 좋은 줄 알것노?
이 게 나의 세 번 째 기쁨이야..."

아,말씀이 기억에 오래 남았더니,아닌 게 아니라 정말 저녁바람에 자전거 산책 가셨다가
들판에 앉지도 말고 빨래도 주의 하라는 그 렙..머시기 그 병균에 감염되어 패혈증으로
그만 그렇게..총총히 가시고 말았다.

언제나 배움에 게을리하지 않으셨던 열정,
가족을 아니 ,자녀의 친구들 마저 제 자녀인 양 사랑하시던 자애,
큰 뜻으로 영농을,사회를, 나라를 염려하시던 어른의 모습 늘 든든했건만,

..아!!..하마 애둘러 가실 길이 아니신데...


순천병원 영안실엔 어른을 기리는 국향 가득한 화환이 장사진을 이루고
유족들의 슬픔은 커건만 어른께선 다시 못 뵈올 길을 가셨다.


아버님! 그리울 것입니다.그 눈빛, 그 음성..
내일 발인에도 못 가뵈옵고 멀리서 한 줄 졸문으로 아버님을 추억하옵니다.

부디 편안히 가시옵소서...
[이 게시물은 최고관리자님에 의해 2021-02-16 11:22:06 방명록에서 이동 됨]